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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7/1/1~915/3/4)
코레아 술탄국의 제 1대 술탄으로서 그는 잦은 확장 정책을 통해 전성기를 이끌어 내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후계자가 두 번이나 죽는 등 패전의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는 민중의 의견을 잘 파악하지 못해 민중 봉기가 많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생전 14번의 공격전과 4번의 방어전을 한 그는 73세에 노령으로 사망하였다. -
이집트 술탄국(그 당시 툴룬 술탄국)의 후계자와 딸을 모계 결혼 시켜 놓았는데 후계자가 죽어서 그 다음 후계자로 내 딸의 아들이 되었다. 이후 이집트 술탄국의 술탄이 죽자 내 딸의 아들인 아가톤 코레아(887~)에게 작위가 넘어가게 되며 이집트 왕국은 코레아 집안의 소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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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톤(887~)의 이집트의 봉신으로만 살 수는 없던 후세인 코레아는 독립전쟁을 일으키고 2년 간의 전쟁 끝에 승리를 쟁취해내고 코레아 토후국은 독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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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술탄국의 거의 대부분의 영토를 보유하고 있던 후세인은 아가톤(887~)에게서 이집트 술탄국을 뺏어 이름을 코레아 술탄국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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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2/3/30~970/11/2)
코레아 술탄국의 제 2 대 술탄이자 크레타 술탄국과 누비아 술탄국의 술탄이다. 그는 후세인 2세의 둘째 손자로서 아버지와 형이 죽어 후계자가 되었고, 후세인 1세가 죽자 술탄을 물려받게 된다. 이집트와 수단 등 북아프리카와 크레타 섬, 안티오키아 등 주로 북벌에 힘을 썼다. 18번의 공격과 6번의 방어전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기지 못 할 때도 많아 오히려 불안정한 정국을 만들어냈고, 내전을 진압하러 말머리를 돌려 본국으로 돌아가던 중 68세에 노령으로 사망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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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톤의 후손인 요하나를 이집트 왕국의 수장으로 올리고자 하는 봉신이 늘고 있던 와중에 후세인 2세의 전쟁이 계속되자 참을 수 없던 봉신들은 내전을 일으킨다. 후세인 2세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말머리를 돌렸지만 오던 중 사망하였고, 승계받은 후세인 3세 대에 나라가 쪼개져 더 이상 내전을 진행할 수 없는 형국이 되었고, 결국 후세인 3세가 포로로 잡히며 패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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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8/4/7~976/10/4)
그는 제 3대 이집트 술탄이자 제 2대 누비아 술탄, 2대 크레타 술탄이었지만 그는 반란 진압에 실패한 뒤 크레타만 남았고 비잔티움 제국에 가입해 중흥을 도모하고자 하였으나 지나친 스트레스로 그의 계획은 파괴되었고, 그는 아들에게 양위하였습니다. -
그는 봉신들에게 크나큰 배신감을 느껴 비잔티움 제국에 들어간 뒤 힘을 키워 다시 돌아가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 첫번째 계획이 바로 기독교화(정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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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타 왕국의 왕인 후세인은 막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더 이상 참지 않고 퇴위하기로 결정했다. 그의 원대한 계획은 더 이상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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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1/7/2~1001/8/3)
이집트의 제 7대 왕이자 크레타와 누비아의 3대 왕인 그는 아버지의 꿈이던 이집트 수복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에 반기를 든 봉신들을 모두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슬람으로 종교를 변경하여 반란을 막고자 하였으나 그의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3번의 공격전과 6번의 방어전을 치룬 그는 40세의 나이로 암살당해 사망했다. -
아바누브는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는 계획을 즉위했을 때 부터 가졌다. 서프랑크와 스폴레토와 연합하였고, 비잔티움 제국 밑에 들어가 기다렸다. 그러던 중 이집트에 내전이 발발하여 요하나 뒤를 이어 자이아가 오르고, 자이아가 비잔티움에게 패배 그의 아들인 타자닌이 즉위하는 것을 보고 그는 생각했다. 지금이 때라고. 그는 연합군과 함께 수도였던 알렉산드리아로 진공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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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누브는 이집트를 점령했지만 그는 그리스도교였다. 하지만 봉신들은 모두 이슬람교도였다. 그래서 많은 반발이 있었고, 농민의 자유봉기, 이집트를 차지하기 위한 봉기, 종교봉기 등 다양한 봉기가 발생하며 이집트는 혼란스러워진다. 아바누브는 연합의 군대를 불러 반란군들을 함께 진압한다. 서프랑크는 중간에 지도자가 죽은 관계로 이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