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k3 Korea

  • Jan 1, 842

    후세인 코레아의 탄생

  • Jan 1, 867

    코레아 토후국 통치 시작

  • Period: Jan 1, 867 to Mar 4, 915

    후세인 1세

    (867/1/1~915/3/4)
    코레아 술탄국의 제 1대 술탄으로서 그는 잦은 확장 정책을 통해 전성기를 이끌어 내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후계자가 두 번이나 죽는 등 패전의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는 민중의 의견을 잘 파악하지 못해 민중 봉기가 많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생전 14번의 공격전과 4번의 방어전을 한 그는 73세에 노령으로 사망하였다.
  • Oct 30, 899

    이집트 술탄국이 아가톤(887~)에 상속됨

    이집트 술탄국(그 당시 툴룬 술탄국)의 후계자와 딸을 모계 결혼 시켜 놓았는데 후계자가 죽어서 그 다음 후계자로 내 딸의 아들이 되었다. 이후 이집트 술탄국의 술탄이 죽자 내 딸의 아들인 아가톤 코레아(887~)에게 작위가 넘어가게 되며 이집트 왕국은 코레아 집안의 소유가 된다.
  • Period: Jun 23, 902 to Aug 2, 904

    제 1차 이집트 내전

    아가톤(887~)의 이집트의 봉신으로만 살 수는 없던 후세인 코레아는 독립전쟁을 일으키고 2년 간의 전쟁 끝에 승리를 쟁취해내고 코레아 토후국은 독립한다.
  • Jan 1, 912

    이집트 술탄국 찬탈

    이집트 술탄국의 거의 대부분의 영토를 보유하고 있던 후세인은 아가톤(887~)에게서 이집트 술탄국을 뺏어 이름을 코레아 술탄국이라 했다.
  • Period: Mar 5, 915 to Nov 2, 970

    후세인 2세

    (902/3/30~970/11/2)
    코레아 술탄국의 제 2 대 술탄이자 크레타 술탄국과 누비아 술탄국의 술탄이다. 그는 후세인 2세의 둘째 손자로서 아버지와 형이 죽어 후계자가 되었고, 후세인 1세가 죽자 술탄을 물려받게 된다. 이집트와 수단 등 북아프리카와 크레타 섬, 안티오키아 등 주로 북벌에 힘을 썼다. 18번의 공격과 6번의 방어전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기지 못 할 때도 많아 오히려 불안정한 정국을 만들어냈고, 내전을 진압하러 말머리를 돌려 본국으로 돌아가던 중 68세에 노령으로 사망하였다.
  • Feb 17, 943

    크레타 술탄국 생성

  • Mar 8, 949

    누비아 술탄국 생성

  • Period: Jun 8, 970 to Aug 26, 971

    제 2차 이집트 내전

    아가톤의 후손인 요하나를 이집트 왕국의 수장으로 올리고자 하는 봉신이 늘고 있던 와중에 후세인 2세의 전쟁이 계속되자 참을 수 없던 봉신들은 내전을 일으킨다. 후세인 2세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말머리를 돌렸지만 오던 중 사망하였고, 승계받은 후세인 3세 대에 나라가 쪼개져 더 이상 내전을 진행할 수 없는 형국이 되었고, 결국 후세인 3세가 포로로 잡히며 패전하게 된다.
  • Period: Nov 3, 970 to Sep 10, 975

    후세인 3세=후세인

    (928/4/7~976/10/4)
    그는 제 3대 이집트 술탄이자 제 2대 누비아 술탄, 2대 크레타 술탄이었지만 그는 반란 진압에 실패한 뒤 크레타만 남았고 비잔티움 제국에 가입해 중흥을 도모하고자 하였으나 지나친 스트레스로 그의 계획은 파괴되었고, 그는 아들에게 양위하였습니다.
  • Jun 4, 973

    후세인 3세의 기독교화

    그는 봉신들에게 크나큰 배신감을 느껴 비잔티움 제국에 들어간 뒤 힘을 키워 다시 돌아가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 첫번째 계획이 바로 기독교화(정교회)다.
  • Sep 10, 975

    후세인의 퇴위

    크레타 왕국의 왕인 후세인은 막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더 이상 참지 않고 퇴위하기로 결정했다. 그의 원대한 계획은 더 이상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다.
  • Period: Sep 11, 975 to Aug 3, 1001

    아바누브

    (961/7/2~1001/8/3)
    이집트의 제 7대 왕이자 크레타와 누비아의 3대 왕인 그는 아버지의 꿈이던 이집트 수복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에 반기를 든 봉신들을 모두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슬람으로 종교를 변경하여 반란을 막고자 하였으나 그의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3번의 공격전과 6번의 방어전을 치룬 그는 40세의 나이로 암살당해 사망했다.
  • Period: Feb 1, 984 to Aug 7, 985

    제 3차 이집트 내전

    아바누브는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는 계획을 즉위했을 때 부터 가졌다. 서프랑크와 스폴레토와 연합하였고, 비잔티움 제국 밑에 들어가 기다렸다. 그러던 중 이집트에 내전이 발발하여 요하나 뒤를 이어 자이아가 오르고, 자이아가 비잔티움에게 패배 그의 아들인 타자닌이 즉위하는 것을 보고 그는 생각했다. 지금이 때라고. 그는 연합군과 함께 수도였던 알렉산드리아로 진공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 Period: Nov 17, 988 to Jul 4, 997

    이집트 봉신들의 아바누브에 대한 저항

    아바누브는 이집트를 점령했지만 그는 그리스도교였다. 하지만 봉신들은 모두 이슬람교도였다. 그래서 많은 반발이 있었고, 농민의 자유봉기, 이집트를 차지하기 위한 봉기, 종교봉기 등 다양한 봉기가 발생하며 이집트는 혼란스러워진다. 아바누브는 연합의 군대를 불러 반란군들을 함께 진압한다. 서프랑크는 중간에 지도자가 죽은 관계로 이탈했다.